스타이지만 억압받던 시스템
1954년 마를린 몬로는 폭스와 계약을 맺은 상태였다. 그녀는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었지만 당시에 출연료가 남자 배우의 20퍼센트 정도였을 뿐이다. 게다가 그정도 스타라면 작품을 고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녀는 작품에 출연이 결정되기 전까지 시나리오도 자기가 볼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녀는 이 상황에서 폭스의 강압적인 출연 요구에 불복하기로 결정하고 핑크 타이즈라는 (정체 불명)의 영화에 출연하라는 강요를 받는다. 그녀의 거부에 출연진을 다른 사람으로 교체해 버리겠다는 협박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는 거부해버렸다고 한다.
자칫하면 제작사의 언론플레이로 위기에 몰릴 수도 있는 상황. 그러나 먼로는 그녀는 한국으로의 위문공연을 통해서 대중의 호응을 얻게 되고 폭스와의 대결에서 일부 승리를 얻게 된다. 폭스가 정한 영화도 찍지만 외부의 영화도 찍을 수 있게 된 것. 절반의 선택권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후에 먼로는 뉴욕으로 옮겨와 독자적인 프로덕션을 세우고 활동을 하게 된다.
노력하는 배우 먼로
그녀는 그저 타고난 외형으로 사랑을 받은 것이 아니다.
그녀는 알고보면 독서광이었다. 그녀가 죽은 후 그녀의 서재에 있던 책들은 기자들을 놀라게 했다. 저 사진에 보이는 책은 율리스시로 어렵기로 영미권에서 유명한 책입니다. 그녀는 평소에도 책을 항상 읽으면서 지냈다고 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배우 커리어를 만들기 위하여 연습하고 노력했다. 그녀의 걸음걸이를 칭하는 먼로 워크는 특유의 매력을 십분 활용한 그녀의 이미지 메이킹 노력의 성과라고 할 수 있겠다.
그녀는 배움에 대한 열정도 있어서 대학(ucla)의 공개 강좌를 들으러 다니기도 하고 당대의 뛰어난 연기 선생 미하엘 체호에게서 연기를 다시 공부하기도 했다. 그녀가 연기에 있어서도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는 점을 사람들이 많이 알았으면 좋겠다. 그녀는 그냥 인기가 많은 스타가 아니라 연기자로 자기를 끝없이 개발했던 배우였다.
참고
미하엘 체홉은 러시아계 배우이다. 체홉이라는 단어는 우리들에게도 익숙하다. 안톤 체홉. 그는 러시아의 작가 안톤 체홉의 조카였다.
그는 스스로의 연기를 영감의 연기로 설명했다. 현대 배우들에게도 큰 영감을 주는 그의 연기 예술 개념들을 눈여겨 볼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