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살이 불어서 좀 움직이기 편하자고 산 낙낙한 원피스가 있었다. 거기엔 파란색 큐빅 알들이 목 주변으로 목걸이 처럼 매달려있었는데 어느날은 옷을 꺼내다가 이 큐빅 낱알들이 빛으로 우수수 떨어지고 말았다. 하필이면 그 날 입고 나가려고 했던 옷이었다. 옷이 좀 엉망이라고 나를 낮잡아 볼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 날 따라 기분이 영 좋지 않았다. 나는 약속을 취소 하려고 전화를 걸었다. 다른 날짜로 약속을 다시 잡으려면 또 한달을 미뤄야 하겠지만, 사실 그냥 일년에 한 두번 수다나 떨자고 만나는 그런 약속이었다.
"제가 조금 있다 전화 드리겠습니다."
언니는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 왜 갑자기 존댓말이람?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문득 어색하게 들렸다. 아마도 무슨 일인지 경황이 없어서 전화를 누가 걸었는지 헷갈렸겠지. 문자로 약속을 취소하는 내용을 문자로 툭 던지고 싶지는 않았다. 예의가 아니기도 했지만 문자를 공들여 쓰는 시간과 노력이 아까웠다. 글을 쓰는 게 직업이 되나서인지 어떻게든지 글은 되도록 한자라도 덜 쓰는게 좋다라는 신조를 가지고 있다. 그러다 깨달았다. 이 작업실 전화 번호는 모르겠구나 언니.
나는 기왕 이렇게 된 거, 그녀를 놀래주자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는 언젠가 직접 달여먹는 보약세트를 주문해서 잘 먹고 있다고 자랑했었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한약을 많이 먹었는데 써서 정말 싫어했거든. 아빠가 한약상이라서 온갖 걸 다 먹어봤지. 그런데 이건 어떻게 이렇게 단지 몰라"
홈쇼핑에서 사 먹는 건강보조 식품이라면 왠지 모두가 영 못미덥게 느끼던 나는 어디 몸이 안좋은 거면 한의원을 찾아가보라고 한마디 했을 뿐이었다. 그래 이걸로 조금 속여보자.